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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생활기

스페인 생활기-Prologue 그 모든 시작

 아마도 본격적인 스페인 여행 붐이 생겨난 것은 케이블 티비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방영 이후가 아닐까 한다. 그 이후 한국-스페인간 워킹 홀리데이 협정이 체결되며 매년 단순 관광객이 아닌, 스페인 현지 생활을 체험하고자 하는 많은 청년들이 스페인으로 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한국 사람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의 대도시 외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아, 물론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고 있는 K-팝도 큰 몫을 했을 테고.

 어쨌든 타국에서 마주치게 되는 한국인들을 볼 때면 스페인의 어떤 모습이 그들을 지구 반대편, 이 먼 나라까지 이끌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언 7년 전, 나는 아일랜드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그저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서 가능한 많은 유럽 국가들을 여행해 볼 심산이었을 뿐, 솔직히 말하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가 스페인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니 사람의 일이라는 건 정말 예측 불가다. 

 

마드리드 솔 광장

 

 스페인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투우, 강렬한 태양, 타파스, 샹그리아, 플라멩코, 가우디 아 그래, 축구도  빼놓을 수 없겠다!  누군가에게는 스페인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될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으로 인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여행지로 남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행의 기억은 철저히 주관적이며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이곳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경험과 의견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일 뿐이다. 사실 여행에 대한 동기부여를 바라며 혹은 타지에 사는 한국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 글을 읽어나갈 분들에게는 어쩌면 실망을 안겨드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반은 이방인이자 여행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생활자인 나의 시선이 스페인이라는 유럽의 한 나라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 물론 누군가에는 나 자신도 포함이 되어 있다. - 수많은 고민과 불면의 나날들이 기쁘게 남겨질 것이다.

 

스페인의 그 흔한 몬따디또, 혹은 타파스

 

 수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 보니 대한민국 홍보대사가 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으레 받는 질문들 중 하나가 -북한 관련 질문은 제외하고- 예상 외로 인구나 면적에 관련한 것이다. 사실 내가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가질 때는 그런 자료들에 관심도 없을 뿐 더러, 안 그래도 숫자에 약한 나로서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꽤나 난감하다. 그러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나의 뻔뻔한 대답에도 그래도 대략적으로라도 답해 달라는 집요한 친구들도 있었으니 왠지 모르게 진지한 궁서체로 간단하게라도 언급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스페인은 유럽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로 국토가 우리나라 면적의 5배 정도라고 한다. 땅덩이가 넓어서 일까? 스페인은 현재 17개의 자치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자치 지방이 다시 50개의 주로 나뉜다. 그래서인지 스페인 사람인 신랑조차도 못 가본 지역이 수두룩 하다. 게다가 각 지방마다 지리적  특성뿐 아니라 그 나름의 지역 색이 꽤나 뚜렷한데 예를 들어, 저 북쪽의 바스크 지방은 고유 언어인 바스크어를 사용하며 지형적으로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고 아일랜드처럼 서늘하고 비가 많이 온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친숙한 곳은 아니지만 수려한 경관과 훌륭한 식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 역시 처음에는 다소 친해지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반면 한번 친해지고 나면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정도로 끈끈한 신뢰를 보여 준다고 한다. 반면 저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을 살펴보자.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고온 건조한 기후를 띠면서 비는 자주 오지 않는다. 바나 카페에 들어가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을 만큼 사교적이고 활달한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반면 너무 느긋하고 태평하여  반대급부가 생겨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차이와 비슷하달까. 물론 이러한 구분은 상당히 위험 요소가 많다. 사람을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를 하고 지레 짐작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미리 단정짓는 것 말이다. 하지만 기후와 자연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그저 참고 사항 정도로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다.

 

 스페인에는 까스떼야노라고 불리는 공식 언어가 있지만 이 외에도 갈리시아어, 까딸란 어, 바스크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공식 언어의 지위에까지는 오르지 못했더라도 각 지방마다 고유의 언어가 따로 있기도 하니 까스떼야노 만으로도 벅찬 외국인으로서는 갈수록 태산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발렌시아만 해도 발렌시아어(발렌시아노)가 따로 있는데 길거리 표지판이나 중요한 간판들은 발렌시아어와 까스떼야노 두 가지 버전으로 혹은 그저 발렌시아어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발렌시아에서는 일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발렌시아어를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 지방의 고유한 특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길거리 표지판 발렌시아노 VS 까스떼야노

 

사랑해(스페인어 버전) VS (발렌시아노 버전) 언젠가 이 문장이 필요할 누군가를 위해 ㅎㅎㅎ 

 

사실 글을 써 내려가기 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더랬다.

‘스페인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그랬더니 떠올랐던 것은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따스하다는 느낌이었다.

태양이 주는 밝음과 따뜻함.

 

알리깐떼 지방 Xalo

 물론 너른 땅덩이를 가진 스페인 전 지역에 해당하는 얘기라고는 할 수 없겠다. 발렌시아가 가진 장점 중 하나겠지만,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날씨와 아침이면 항상 그곳에 떠 있는 태양이 미치는 영향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강력하다.

 

아일랜드의 흔한 날씨

 

 아일랜드에 가기 전, 사계절 아름다운 우리나라에 살아 본 나로서는 햇볕의 소중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사시사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우울한 날씨를 배경으로 여러 해를 살고 보니 광합성 작용은 식물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이면 쨍하게 파란 하늘에 나와 있는 태양을 마주하다 보면 나 같은 비관주의자 마저도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잘 마른 빨래에서 나는 뽀송한 햇볕 냄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겨울에도 하루 이틀이면 이불을 바싹 말릴 수 있는 날씨를 가진 발렌시아에 살게 된 것이 꽤나 큰 행운이라고 하겠다.

 

 발렌시아는 스페인 동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 지중해와 근접하고 있다. 지도 상에서는 해안가를 타고 바르셀로나보다 아래쪽에 있다고 설명하면 좀 더 쉽게 그림이 그려지실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나는 수치와 지리에 약하다. 물론 약한 부분이 저 두 가지만은 아니다. 심지어 처음에 나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위치를 바꾸어 알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고속열차인 아베를 타면 두 시간 남짓, 바르셀로나에서는 서너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발렌시아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강인 선수가 몸 담구고 있던 발렌시아 축구팀 덕에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발렌시아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도시가 아닐까 한다. 스페인 제 3의 도시라고는 하나 수도인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비해 관광 인프라 차원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와 시골의 특징이 혼재해 있달까. 그러나 축복받은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질 좋은 먹거리(빠에야, 오렌지 등등)들은 분명 발렌시아의 자랑거리이며 이외에도 한국인들의 발걸음을 끌어 들일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일상 속에서 그런 발렌시아의 속살을 하나 하나 발견해 나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