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F.C.를 비롯한 세계 명문 구단을 보유한 스페인의 축구 리그, La Liga.
사실 "축구"를 주제로 한 꼭지를 써보고 싶었는데 워낙 박학다식하고 열정적인 팬들이 많으시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축구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얕은 지식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과 축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보니 결국은 이렇게 감히 시작을 하고 있다.
발렌시아에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클럽인 발렌시아 C.F. 가 있다. 최근 몇 년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수많은 팬층을 보유한 명문 클럽 중의 하나이다. 메스따야로 불리는 경기장을 살펴보자.

싱가포르 출신 구단주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발렌시아 C.F. 는 경기장 스케일부터 압도적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강인 선수가 몸 담고 있던 팀으로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현재 마요르카 팀에서 뛰고 있다. 이강인 선수가 손흥민 선수를 뛰어 넘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5년 전 마드리드 VS 발렌시아의 경기를 이곳에서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그 뜨거웠던 열기는 아직도 잊지 못할 정도이다. 팬이 아니었던 나조차도 엄청난 응원의 열기에 동화되어 Amunt,Valencia를 외쳤더랬다.
2시간 여를 쉬지 않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서포터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석에 앉아 있는 팬들조차 열정적이다 보니(본인의 차며 사무실을 발렌시아 관련 기념품들로 장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기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모두들 경기장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발렌시아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메스타야에서 한번쯤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클럽은 발렌시아 C.F. 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발렌시아의 또 다른 클럽 Levante U. D. 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축구에 문외한인 내가 어찌 이 팀을 알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신랑이 이 팀의 서포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주변인이 모두 발렌시아 C. F. 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랑은 20년째 꿋꿋이 레반테를 응원하고 있다. (모임에 나가면 부진한 성적 때문에 놀림을 당하기 일쑤이지만.)
몇 년 전에는 초라한 성적으로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가 눈물겹게 1부 리그로 복귀한 일도 있었다. 시즌권을 가지고 있는 신랑 덕에 가끔 경기를 관람하러 가지만 이 팀, 참 어렵다. 후반전에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과 일부 게으른 선수들, 이해가 안 되는 전략을 펼치는 감독까지. 그러나 또 신기한 것이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 같은 강팀을 만나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구단들과는 다르게 자금부족으로 인해 선수들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 팀 선수들 연봉을 다 합쳐도 호날두나 메시의 연봉이 안 된단다.)이지만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화가 나서 경기장을 나서 버리는 팬들을 종종 목격하기도 하니 전반적으로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체 우리 신랑, 이 팀을 왜 응원하는 걸까.
사실 본인도 정확하게는 설명을 못 한다. 스페인 사람이라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지사. 어릴 적 그는 발렌시아 C.F. 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이유는 알 수 없다.) 할아버님이 레반테 팬이시기도 하셨고 그러다 보니 시아버님과 함께 레반테 경기장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메스타야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좀 더 가족적이고 친근한 경기장의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나. 현재의 레반테는 정말 팬들도 등을 돌릴 정도로 형편없는 경기를 펼치지만 그동안 꽤나 인상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도 한다. (내가 관심이 없는 관계로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은 안 하기로 한다.)
실제 경기장에 가보면 메스타야보다 레반테 경기장에서 가족 단위의 팬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때문에 메스타야에서 경험한 격정적인 응원 문화를 이곳에서 느끼기는 쉽지가 않다.
사실 나는 시즌권을 사는 신랑을 말리고 싶지만 시즌권을 가지고 있을 경우 유명한 원정 팀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팀이 원정을 오는 경우 시즌권 소지자들 중 일부는 그 경기 티켓을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단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사실 오늘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스페인 축구 클럽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과 축구의 상관관계이다. 축구 전용 채널이 여러 개 있어 하루 종일 축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나라, 스페인. 그들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 외(바에 가는 것은 제외다.)에 다양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축구는 정열적인 피가 흐르는 스페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프랑코 독재 시절, 대중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장려되었다는 것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스페인 클럽들의 경기력이나 내용이 뛰어나 경기 자체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막상 경기장에 가면 신랑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을 하곤 하니 엔터테이닝으로서의 기능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한편 나는 축구 경기장에 가면 스페인 사람들을 관찰하며 즐거워하곤 한다. (경기보다 사람 구경이 더욱 흥미로울 때가 있다.)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정적인 팬들도 있지만 선수들 혹은 심판을 향해 소리치며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부족한 스페인어 실력이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다 보면 박장대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비속어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많은 비속어를 배워온다는 것이 단점 아닌 단점이기도 하다. 더 재미난 것은 그렇게 경기에 대해 관전평을 하면서 옆 혹은 앞뒤에 앉은 타인과 쉽게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근처 바(bar)로 가서 그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고 하니 수다 떨기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축구 경기장이 또 하나의 사교의 장인 셈이다.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시작부터 못을 박았던 내가 점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듯하다. 내가 경기장에 가기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 바로 보까타(bocata)이다. 우리가 야구장에 갈 때 온갖 주전부리들을 챙겨가듯이 스페인 사람들도 저녁 경기를 보러 갈 때면 간단하게 요기가 가능한 샌드위치 등을 준비해 간다. 바게트 빵에 알리오 올리오 소스를 바르고 또르띠야 파타타를 넣은 것이 가장 전형적인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부드럽고 중독성 있는 맛을 자랑한다. 맛도 맛이지만 소풍 가듯이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가 격의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저녁, 스포팅 데 히혼과의 경기(레노베이션 이전 경기장의 모습)가 펼쳐졌다. 바로 옆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한 소년이 경기 관람을 왔다. 아버지도 아닌 어머니와의 관람이라니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든 모습도 아니란다. 미래의 당신 모습일 수도 있다는 신랑의 농담에 장난 삼아 썩소를 날리긴 했지만 축구에 좀 더 흥미를 붙이게 된다면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우중에도 많은 팬들이 찾아준 경기, 점점 거세진 빗줄기는 여름철 장마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다. 일부 팬들이 자리를 떠나기도 했지만 우리를 비롯한 많은 팬들이 경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우비를 입었음에도 속옷까지 홀딱 적시고 경기 내용까지 실망스러웠지만 빗속의 축구 경기 관람은 꽤나 즐거웠다. 진정한 팬들만 남아서 응원을 하는 분위기였달까. 어쩌면 나도 축구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레반테가 올해에는 좀 더 분발해 주길 기대하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